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문단 편집) === 피해자의 사망 === [[1989년]] 1월 4일, 미야노 히로시는 [[마작]]에 크게 실패해 10만 엔(2023년 환율 기준 약 96만 원)에 달하는 빚을 지고 야스시의 집에서 일행과 합류했다. 12월 20일경부터 준코의 상태가 극히 심각해져서 그들은 준코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으로 여겨 한동안 찾지 않고 C의 집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 히로시는 "마작에서 진 것도 다 준코 때문이야"라며 "오랜만에 준코를 괴롭히러 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다같이 신지의 집으로 가 준코를 폭행했다. 이때가 오전 8시. 탈진한 준코를 세우고 얼굴에 촛농을 떨어뜨리거나 소변을 먹였고 양 옆에서 1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른 1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머리, 어깨 등을 번갈아 가며 구타했다. 이때 야스시는 "딱히 관심 있지는 않았으나, 히로시와 유즈루가 두려워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준코가 자력으로 일어서려다가 넘어져 카세트 플레이어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걸 보고 히로시는 [[미필적 고의|준코의 죽음을 예감했지만]] 꾀병이랍시고 더 심하게 폭행을 계속하고 유즈루 역시 6kg짜리 아령을 하복부에 떨어뜨렸다. 준코의 반응이 없자 억지로라도 깨우려고 불로 피부를 지져 봤다. 준코는 처음엔 움찔했지만 미동도 없어졌고 소년들은 "죽은 것 아닌가?"란 두려움에 휩싸였으나 곧 "원래 이렇다"는 신지의 말을 듣고 안심한 뒤 테이프로 준코의 발목을 묶어 방에 방치하고 오전 10시가 되자 막 개장한 사우나로 갔다. 준코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니 감시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전원 외출한 것. 이후 당일을 넘기지 못하고 준코는 사망했다. 하루 외박을 한 소년들은 고지에게 "준코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준코가 감금당한 방은 안에서만 열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C의 형의 방 베란다에서 상태를 지켜보니 준코가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다. 소년들은 "준코가 죽은 것 같다"며 들어가길 꺼렸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 준코의 몸은 이미 차가운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기일(1월 4일)은 그녀의 생일(1월 18일) 14일 전이었다. 또 준코가 납치(11월 25일)된 지 3일 후(11월 28일)가 그녀의 어머니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전부터 어머니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